중고거래

Photo by tusumaru/iStock /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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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승강장을 빠져나오기 전에 다시 한 번 약속장소를 확인한다. “Tea Party with Alice”라 에스프레소를 끝내주게 뽑는 집이라고 했었지. 다행이 별로 멀지 않네. 지상으로 올라오니 비가 내리고 있다. 젠장, 기타 무거워 죽겄는데. 
지하철 입구 지붕 밑에 서서 비를 맞고 걸어갈 각오를 조금씩 끌어 모은다. 
“하아”
늘 그렇을테지만 도로는 지독히도 막혀있다. 깝깝하겠구만. 평일이었다면 나도 저들 중에 하나였을 테지.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서서히 커진다. 앰뷸런스다. 마음만 바쁜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다가 오고 있다. 하긴 아무도 꼼짝 못하는데 홀로 움직이고 있다는 건 거리에서 제일 빠른 건지도 모르겠다. 짜증이나 카페로 나선다.
카페로 들어서서 어께에 빗물을 털어 내고 자리를 적당히 잡고 카운터 앞에 섰다. 
‘에스프레소 2.5’
‘라뗴 4.5’
‘카푸치노 4.5’

나무판에 손 글씨로 쓰여 있는 메뉴판은 딱히 특별할 것 없는 메뉴를 조금이라도 특별하게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고 나름 성공 적이었다. 
“에고 죄송합니다.”
입구에 로스팅 기계에서 커피콩을 담고 있던 아저씨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 가격인가요?”
“네. 따뜻한 걸로 드릴까요?”
“예. 제일 큰 걸로 주세요. 샷은 얼마나 들어가죠?”
“쓰리 샷이요. 그란데 사이즈에요. 드시고 가실건가요?”
“예. 잔은 테이크아웃으로 주세요.”
“네. 가져다 드릴게요. 앉아계세요”
4시 50분. 한 10분 남았네. 영업이라는 게 제일먼저 강요하는게 시간약속이라서 10분밖에 일찍 도착하지 못한거지. 일로 만난 사람이긴 하다만 일로 만나는 건 아니니 뭐 상관없지. 카톡을 쓰지 않는 박선생이라 텔레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박선생님 도착했습니다.’
작은 초콜릿과 함께 커피가 나왔다. 끝내준다는 커피는 비 때문에 생긴 불쾌감은 끝내주었다. 한산한 커피숍. 토요일 오후니 그럴만 한지도. 각기 디자인이 다른 5 테이블을 나 하나, 여자 손님 하나, 그리고 모자 쓴 남자, 토끼, 생쥐 인형이 차지하고 앉아 있다. 커피를 전해준 사장이 토끼인형을 들어 생쥐 인형 앞에 앉힌다.
5시 10분.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연락주세요. 기타가지고 왔습니다.’
영업을 뛰니까 말이지 커피 맛도 알아가고 핸드폰 게임도 늘고. 사탕을 좀 부시다가 커피를 마저 마신다. 벌써 차갑네. 늦어질 줄 알았으면 머그잔에 받을 걸. 한 잔 더 시키러 카운터로 간다. 
“여기 차도 하시죠?”
“네 Tea Party니까요. 그래도 커피가 더 주력이에요.”
“콩은 어떤 거 쓰세요?”
“저의 집 하우스 블랜드 만들어서 씁니다.”
“그럼 라떼한잔 주세요.”
“네 가져다 드릴게요.”
너스레를 떨긴, 영업이 몸에 배였나 보다. 사람만한 토끼인형 머리를 쓰다듬고 자리에 다시 앉는다. 5시 15분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아직도 전화를 받을 수 없단다. 
고양이다. 고양이 한마리가 건너편에 의자에 올라와 앉았다. 혼자 앉아 있던 여자가 다가와 고양이를 끌어안는다. 
“죄송합니다.”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져있다. 어지간히 고양이가 귀찮은 모양이다. 자리로 돌아가 고양이를 케이지에 넣는다. 청바지에 후드에 편하게 입은 듯 차려입은 듯 애매한 차림이다. 여자는 자리에 앉아 한숨을 쉬고는 전화를 건다. 5시 20분 나도 전화를 다시 걸어본다. “지금은 통화중이라…” 다른 음성이다. 대충 10초를 쉬고 다시 전화를 걸어본다. 다시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단다.
기타. 한동안 열심히 달렸었는데 벌써 3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복사기 회사에 영업직이 있는지도 몰랐지. 집안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 보다야 애들 클럽활동으로 쓰이는 게 다행이지 뭐. 근데 박선생은 왜 연락이 이렇게 안되는거야. 김영란 법 때문에 꼭 구매해야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다시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다. 
“네 박정환 선생님 전화 아닌가요.”
“아 여기 OO 병원 응급실입니다.”
“응급실이요?”
“네 환자분 지금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오셨어요. 환자분이랑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아 거래처 분이라 서요.”
“그럼 혹시 지금 오실 수 있으신가요? 핸드폰 장금장치 때문에 다른 분께 연락드릴 수가 없어서요.”
“아…. 네….”
아 이런 거 거절하면 김 부장한테 엄청 깨지겠지.
“네 거기 위치가 어디죠?”
“네 여기가…”

병원은 별로 멀지 않았다. 짐을 정리해서 카페를 나선다. 다행이 비는 멈췄다.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
“4500원 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커피에 택시에 기타에 나중에 밥이나 얻어먹어야지. 내가 사주는 게 위반이라도 얻어먹는건 위반 아니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응급실을 복잡했다. 
“저기 박정환씨 찾으러 왔는데요.”
“저 면화는 이쪽이 아니라.”
“응급실에서 전화가 와서요.”
“아 정아씨.”
간호사로 보이는 여자가 귀찮음이 가득한 얼굴로 다가온다.
“네 박정환씨 보호자 분?”
전화에서 듣던 목소리다.
“아뇨 보호자는 아니구요…. 거래처 사람인데요.”
“그럼 보호자 연락처 있으세요?”
“네 학교로 전화해볼께요.”
“네?”
“아 박정환 학교 선생님이세요.”
“아 네.”
학교 전화번호를 찾으며 물어본다.
“근데 박선생님 괜찮으신가요?”
“보호자 아니시면 말씀 못해드려요.”
“그럼 잠시 뵐 수 있어요?”
“지금 정신을 잃으셔서 불가능해요.”
멍하게 간호사를 처다본다. 
“저 그럼 연락되면 알려주세요.”
간호사는 박선생의 핸드폰을 건네주고는 복도로 사라진다. 정신을 잃었다고? 많이 다쳤나?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정환씨 핸드폰 아니에요?”
여자 목소리다.
“아 맞습니다. 지금 병원이에요. 박선생님이 지금 사고를 당해서요.”
“사고요?”
“네 그런가봐요.”
“거기 장소가 어디에요?”
장소를 알려주고 학교에 전화를 건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저녁이라 그런지 응답이 없다. 다시 박선생의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정환아 어디냐?”
“저 박선생님 지금 사고가 나서요. 지금 병원입니다.”
“네? 사고요? 어느 병원이에요?”
정신이 없다. 전화를 받는 나도 전화를 건 그도. 아마 박선생이 가장 정신이 없겠지. 
여자가 들어온다. 손에는 케이지가 들려있다. 카페에 그 여자다. 언 듯 처다보다 지나 친다. 짜증이 더 심해진 표정이다. 여기저기 묻더니 천천히 다가와 내 앞에 선다.
“저기. 전화 받으신 분인가요?”
“아… 네. 박선생님.”
“예. 혹시 여자 친구 분이신가요?”
“아니요. 이제 아니에요.”
“아… 예.”
“저 정환이는 어때요?”
“저도 들은게 없어서요. 보호자가 아니면 알려 줄 수가 없다고 해서요.”
여자가 입술을 깨문다. 정신을 잃었다는 말을 하려다가 말을 멈춘다. 남자가 뛰어들어와 여자에게 말을 건다.
“승아씨 어떻게 된거아?”
카페 사장이다.
“저도 모르겠어요. 저 분 한테 연락받고요.”
“아. 혹시 커피..”
“네. 커피숍에서 아까.”
“아 정환이 기다리고 계셨던 거구나. 정환이 어떤가요?”
“보호자만 알려준다고 해서요.”
“아… 네…”
간호사가 다가와 말을 건다. 
“저 보호자랑 연락되셨어요?”
“네”
대답을 하고 여자와 카페 사장을 바라보았다.
“아뇨. 저는 전 직장 동료인데요.”
“아뇨. 그 사람 저의 카페 단골이에요. 커피 빈 주문해놓고 안오길래 전화했더니 이게 뭔일이야?”
간호사가 다시 나를 바라본다.
“저기 직장에 연락하신다면 서요?”
“아 예. 잠시 만요.”
전화번호부에서 학교 전화번호를 찾는다.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전화를 받지 않는다. 여자와 카페 사장은 간호사랑 이야기를 한다. 다른 동료 교사에게 전화를 건다. 여자는 자리에 앉아 울기 시작한다. 사장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벌써 3명째 전화를 받지 않는다. 3년 만에 세상구경한 기타가 병원 구석에 얌전히 놓여있다.

2016년 12월